들판에 흐드러진 노란 꽃과 보랏빗 하늘색 꽃잎이 하늘한 꽃을 사람들은 구절초라고 부르지 않고 들국화라고 부른다. 무척이나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구절초-개미취-산국-노란 꽃잎이 고운 꽃이지만 사람들은 참 이름은 구절초다. 가마솥처럼 후끈 달아오른 한 낮 산국농장을 찾았다. 생강나무가 흐드러진 금병선 아랫자락에 자리한 구절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글 쓰는 이가 살고 있다. 서너 권 시집을 내고도 시인이라 불림을 쑥스러워하는 존경하는 시인이 사는 터이기도 하다. 선배의 마음을 앗아간 시인의 은빛 머릿결은 오늘따라 더욱 멋스럽게 바람에 날리었고. 은근히 바라보는 행복한 선배의 눈빛을 읽으며 선배의 작품 속에 등장할 만하구나 하며 피식 혼자 웃어버렸다. 얼마나 좋을까 나도 저런 이가 있다면
신남에 자리한 향토작가인 이 분의 고향이자 얼을 지키며 작품의 배경이 고스란한 이곳은 그 분의 체취로 물들어 있었다. 그 분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산국농장 앞뜰에서 문학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참가한 학생들과 널찍한 바위에 올라 앉아 그 유명한 시인을 만났다. 여러 번 다른 행사에 시인이 들른다는 기별 듣고 먼발치에서라도 보고파 떠돌다가 최근에 모더니즘 시학 회에도 얼굴을 내밀었지만 보이지 않아 허허 로이 발길을 돌렸었던 시인이 앞에서 은은한 말을 쏱아내고 교직에 한 때 몸담아서인지 차분하고 조리 있는 언변에 푹 빠져버릴 수밖에 강의 끝에 질문을 받았지만 어린학생들이 많아서 어른이라고 한 나는 틈을 얻지 못했다. 그 분의 음성으로 시 하나 청하여 듣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특강이 끝나고 후배와 쪼르르 시인에게 다가가 질문도 하고 좋은 이야기도 들으며 여고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가까이서 본 맑은 눈을 가진 시인은 청년 같은 풋풋함을 풍기고 산 나리꽃 향을 풍겼다. 주워들었지만 전설이 되어버린 시인의 일화를 나누며 보약 같은 시간은 어찌 그리도 무심히 지나가는지 시인은 내 이름에 또 한 번 갸우뚱 하며 혹 위장한 남정네가 아닌가하며 스윽 쳐다보기도 하였다. 어둠이 나리고 사람들이 일어설 무렵 좋은 시 지을 수 있게 징표라고 악수로 감사함을 전하며 아쉬움에 멀어질 때까지 서 바라만 보았다. 속절없이
사람들이 빠져나간 사이 야생화 향기가 에워싸고 우리는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농장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누리장나무 꽃을 을 지나 범나리꽃을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나, 나의 탄성에 쥐똥나무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려던 선배가 토끼눈으로 뒤돌아보았다. 꽈리를 보였다. 아직은 파랗지만 한 무리가 모여 주렁주렁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애써 감추고 하루하루 빨갛게 익어갈 꽈리를 쓰다듬었다. 산촌에 지천으로 열렸던 꽈리 속을 빼어먹고 바람을 넣어 잇몸으로 눌러주면 예쁜 소리가 나서 참 좋아했었고 가을에 흠뻑 꽈리를 먹어서인지 지독히도 추웠던 유년에 기침 서너 번으로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꽈리였다. 고추잠자리 찾아오라는 선배랑 손을 잡고 토실한 복숭아나무 아래로 들어섰다. 처녀 젖가슴을 닮은 봉긋한 사과의 푸른 이파리 사이로 일어서는 바람을 가슴에 담으며 꽃밭인지 과수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탐스런 배는 누런 봉투 속으로 들어앉고 이파리만 성성한 배나무를 아래를 지나 어우러진 꽃봉오리 사이를 오가며 붉은 장미 숲에서 고요히 선 흰 장미 장미꽃잎만 만지작거렸다.
더운 바람을 피해 농장 안채로 들어갔다. 복중에 더운 차와 나무에서 바로 따온 복숭아로 시인의 대접을 받고 어쩔 줄 몰랐다. 목을 뽐내는 이가 즉석에서 어려운 오페라 한토막을 토했고 저는 한자락 모기소리로 읊조리다가 선생님 모시고 밖으로 나오니 근래 보기 드문 보름날의 그 보름달이 환장할 불덩이가 터질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봄봄집에서 막국수와 채 썰어 김치에 말은 묵으로 저녁을 하고 다시 아이들 문학놀이가 무르익은 운동장으로 올랐다. 어둠에도 눈에 띄는 이들과 눈을 맞추고 신나는 음악에 몸을 흔들었더니 낯익은 촌장님이 다가와 귀엣말을 흘린다. 조금 기다려요. 시간 줄 테니 하하, 어쩌나
환장할 저 달은 여전히 내 머리위로 머물고 산은 말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더운 가슴으로 나를 보듬고 점점 깊은 곳으로 날아가고 운동장 가득한 열 기속 아이들 몸짓은 건성으로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평소 이야기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소설 쓰는 이 허리를 쿡쿡 찔러 시간을 만들었다. 어둠이 내려도 고요하지 않은 신남역사 주변을 두란이며 한참이나 걸었다. 걸어도 떠들어도 더해만 가는 갈증에. 동백꽃 주점 문을 열었다.
아직 짝을 못 찾았다는 작가의 한 마디에 "혹시 여동생이나 참한 후배 없습니까? " 웃음 뿌리며 뻥튀기와 보리술로 목을 축였다. 겨울이면 설피를 신어야 하는 진부에서 태어나 글쟁이로 다시 고향을 찾았다는 옥수수 감자 먹으며 작품 구상을 하며 살아가는 진솔한 마음이 참 푸짐 했다.토속적인 강원도 사투리에 담긴 속내를 들으며 시간이 가는지 거꾸로 돌아서는지 시간은 우리 곁에 머무르지 않았다. 다시 궁금하여 뒤따라 온 산국을 사랑하는 시인 서너 명과 좁게 끼어 앉았다. 화려한 치장의 노래하는 이가 목을 뽐내 엇고 늘 물 감속에 빠져 살아가는 그림쟁이는 어찌할 수 없음에 몸짓으로 한 폭의 종이를 채우고도 모자라 거리로 나서니 앞을 가로막는 달 속으로 뛰어들었다. 우리는 전사처럼 저 환장할 달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