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첫날을 열며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목백합 나무는 푸른 이파리를 비죽이 내밀고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따뜻한 음료를 사들고 교문 앞을 서성였다. 차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버지들 독서실 봉고차 이 깊은 시간에도 아이들은 학원을 가는지 학원차들도 한몪 하여 꼬리를 물고 시동소리에 귀가 먹먹해왔다. 덥석 아이를 안아 차에 올랐다. 손이 차다. 어찌할거나, 안스러워 가슴이 시려왔다. 아이가 말했다.
"오늘 대학진학에 대하여 상담 했어요"
그래, 벌써하니. 2학년인데
"네, 했어요"
"그런데 상담중에, 옆에 계시던 선생님이 엄마 만났다고 하셨어요, 됴꾸하우스에서요"
앗, 언제 그랬구나, 그래 뵈었단다. 생맥주집에서 위낙 좁은 곳이라 별 수 없구나
"그러니까, 상담 선생님이 너희 어머니 그런 곳에도 가시니. 하셨어요"
어머나
그래서 챙피했니
"아니요, 아니었어요"
그래 다행이다, 우리는 하하 웃어버렸다.
우리 딸 멋지구나, 역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넘겼다.
상담은 어찌 되었니
"가고싶은 곳 말씀 드렸어요"
잘했다. 그래 선생님은 무어라 하시든
"그 학교에 대하여 인터넷에 들어가 잘 살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 엄마가 살펴보고 있으니 우리 함께 해보자, 꼭 갈 수 있을 거야
세시가 넘었다. 이제야 아이방에 불이 꺼졌다. 아직 사교육비 한푼 안들이고 고등학교까지 왔으니 참 고맙고 예쁜 아이다. 흔한 괴외니 학원이니 마음 안주고 여지껏 혼자 해 왔다. 아이도. 나도, 내심 그런 마음 가지고 있지만 마음 약해질까 드러내지 않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안스럽다. 늘 서너걸음 두고 물러서 지켜볼 뿐이다. 이제는 도와주기 보다는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보듬어 주는 것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열고 이해하는것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생각의 깊이를 마음 씀씀이를 꽂꽂하게 지탱하여 주기란 쉽지가 않다. 아직은 아이를 위해 가슴을 열어두어야 한다.
오전에 통화한 친구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맘길에 걸린다. 조기에 퇴직한 곁지기는 일정한 월급이 없고 아이 셋 키우기란 쉽지 않을 줄 알고 있었지만 지난 여름만 해도 대단했던 친구였다. 옷은 백화점 물건 아니면 취급도 안 했으며 집에서 밥짓는 날이 외식하는 날보다 적었다. 아이 셋을 일류학원도 두세개씩 보낸다며 사교육비 한푼도 안 들이는 나를 많이 모자란 자격미달인 애미로 취급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말 했다. 큰 아이만 다니고 작은 애들 과외 학원 끓었다고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했더니, 잠시 말이 없었다. 그 말 많던 친구가 훌쩍 줄어든 것을 보니 맘고생이 심했나 보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파출부 나간다고 했다. 큰 아이 학원비 벌려고, 나는 얼른 말했다. 그래 우리가 못하게 무엇이 있겠니,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어김없이 쳐들어 왔다.
잔인한 사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