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삼월은 우리고장의 자랑인 "김유정 선생의 67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1930년대 일제치하에서 우리나라 단편 소설가중의 한 사람인 김유정은 땡볕, 소나기, 봄. 봄, 금따는 콩밭. 산골 나그네, 솥, 동백꽃, 등등 수편의 작품을 써 놓고 떠났다. 후세는 그의 작품을 평하여 우리나라 문학사상 최초로 토착적 유머어를 정착시켰다고 하고, 최적한 장소에 최선의 언어를 배치하는 뛰어난 작가라고도 했다. 우리는 무지개처럼 찬란히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져간 김유정의 한을, 아픔을 그리고 눈물겨운 슬기를 아니 그분이 그 시대에 못다 한 단 한 마디의 말을 들기 위하여 "금병의숙"에서 영상화한 "땡볕" 영화상영을 시작으로 추모식 행사를 이어갔다.
오늘은 선생의 작품에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들어있는 금병산 산행과 함께 나무 심는 날이다. 비가 지나간 끝이라 쌀쌀한 이른 아침을 열었다. 조촐한 식전 행사를 마치고 문학촌 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를 마치고 아름다운 산행이 시작되었다. 보기에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던 금병산은 오를수록 키가 자라는지 정상이 보일 듯 하더니 어느새 달아나고 짓궂기도 했다. 오를수록 높아만 가는 것을 왜 일까 키가 자라는 것일까 고혹한 향기를 뿜는 노란 동백꽃(옛여인들이 잎이 지고 난 뒤 맺히는 검은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리를 빗었다고 함)또는(생강나무, 가을에 잎이 지고 나뭇가지를 씹으면 쌉싸름한 생강 맛이 난다고 함)이 양옆으로 들러리를 서고 봉긋한 진달래꽃망울이 곱기도 하다 푸른 이파리들이 메마른 나뭇가지에 비죽이 돋아나고 서걱이는 갈대 숲을 뚫고 올라온 이름 모를 풀들이 지천으로 무리를 이루고 있다. 산골에서 태어나 어지간한 풀은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낮선 친구들이 눈에 뛴다. 가만가만 들여보아도 모르겠다. 배춧잎처럼 넓은 잎으로 겹겹이 둘러싼 친구에게 "색시 치마폭"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색시 치마폭이 배시시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비탈진 길을 두시간 오르려니 선배들 발걸음이 느려진다. 나는 작대기를 주워 선배들께 지팡이를 해 드리고 참꽃도 한줌 따 입에 넣어 드렸다. 옛날에는 참 달콤했는데 입맛이 변했다고 한다. 나도 참꽃을 한 입 물고 하늘을 보았다. 소월이 사모하던 여인을 찾아 절을 찾았으나 거절하는 여인을 두고 진달래꽃길을 내려오던 그 마음이 생각이 나서 살포시 옷깃을 여몄다. 발길을 재촉하여 정상에 오르니 후텁지근함도 바람에 실려가고 찬 기운이 온몸을 훑는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나의 등에 메 달려 힘들게 올라온 초코렡과 과자를 어린이들과 나누고 동내 이장님의 나무 잘 심기 설명을 듣고 동백나무와 고로쇠나무를 심었다. 유치원아이 고사리 손부터 은발의 어르신들까지 등을 숙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꼭꼭 밟아주며 분주하게 손길이 오간다. 문학촌 촌장 님은 싱글벙글 하시며 아이들 곁을 맴돌다가 너희들이 심은 아기 고로쇠나무가 자라 어른이 되어 고로쇠물을 주면 나도 먹을 수 있을까 하시며 웃음을 자아낸다. 그 많은 나무들이 다 하늘로 섰다. 나무심기가 마무리되고 하산이다. 내려오는 길은 감미로운 바람이 들을 밀어 주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김유정 선생이 그토록 보고싶어하다 세상을 떠난 동백꽃도 소월의 눈물처럼 붉은 진달래꽃도 뒤로하며 다시 찾은 문학촌 마당에는 푸짐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지친 다리를 잠시 펴고 걸터앉았다. 시원한 막걸리로 목을 축이니 새로 태어난 듯 하다. 선배랑 주거니 받거니 사양해도 소용없어 주는 대로 받다보니 노을이 금병산 허리에 걸려있다.
달콤한 곡주는 나를 홍당무로 만들고 말았다. 붉은 얼굴위로 하얀 메밀꽃잎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지난여름 봉평 메밀꽃잎이 떨어진다.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메밀꽃, 거닐다, 메밀꽃술을 마시고. 애련한 풍경소리. 쓸모도 없을 대문짝만한 사진을 만들다 어둠이 꽃을 덮을 때까지 밤을 하얗게 거닐던 꽃자리, 꽃망울 맺을 때부터 그 많은 꽃이 다 스러지도록 서너 번이나 들락달락 하였었다.
꽃바람에 지쳤다. 어질어질 하다.
후려치는 바다 포효하는 바다를 보고싶다.
눈두덩 이가 짓무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