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나 한 수

樹海

취한배 2004. 6. 14. 15:28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였다. 설자리를 삼가, 구중심처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樹中公主)이던가!…(정비석「산정무한(山情無限) 수해(樹海)라니요? 새봄 치레로 한해살이 꽃분 몇 개 들여놓고는 남 없는 호사(豪奢)를 누리는 줄 좋아라 하는 가난한 살림살이, 우리 사는 어디에서 나무의 바다를 볼 수 있다던가요? 늦도록 봄이 오지 않아 안쓰럽더니 아카시아향기 스쳐간 뒷동산에도 어느새 여름 무성해졌습니다. 온박음질로 한 땀 한 땀 찔러오는 햇발을 피해 오솔길 걸어 오릅니다. 늦은 걸음 10여 분, 고대 닿는 꼭대기에서 섬처럼 떠있는 작은 바다를 만납니다. 먼저 와서 몸을 식힌 골바람이 가슴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갑니다. 높이가 어느 만큼이든지 산 아래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산의 중턱에선 푸른 물결 하나 겨우 허리에 감을 수 있을 뿐입니다. 땀흘려 정상에 올라야만 자작나무 아니라 잡목(雜木)의 숲일지라도 그리던 수해(樹海)를 만날 수 있습니다.

   거친 세파(世波), 몸은 비록 낮은 곳으로 휩쓸려 흐르더라도, 마음만은 높은 자리에서 거닐도록 해야겠습니다.

 

   물의 바다든 나무 바다든, 넓은 가슴으로 품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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