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戀時
잔에뷔테른은 창문을 열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파리의 낭만적인 정취는 여전했지만, 거기에는 이제 아무런 생명도, 의미도 없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울기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은 영원한 하나됨이다. 그 하나됨을 얻기 위해서는 자유로워져야 한다.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창턱에 발을 올려놓았다. 비상하는, 새처럼 자유를 향해 탈출했던 이카루스처럼 그녀는 날아올랐고 곧 추락했다. 鋪道를 울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거리의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비명이 터져나왔다. 사람들은 그녀의 주검을 향해 한둘 몰려들었다. 그렇게 잔은 세상을 떠났다. 8개월 된 뱃속의 사랑의 씨앗과 함께,
기다란 인물상으로 유명한 화가 모딜니아니와 그의 아내이자 모델이었던 잔 에뷔테른, 두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의 하나가 되었다. 3년여의 세월동안 모딜니아니와 잔은 20여점에 이르는 잔의 초상화를 함께 만들며 열렬히 사랑했고 아파하며 고결하고도 순수한 미적 승화를 이뤄냈다. 비록 이른 죽음으로 짧은 사랑의 궤적을 그렸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늘날까지 진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화가와 미술학도로 만난 두사람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부의 연을 맺어 충만한 행복감으로 살았다. 변합없이 마시던 술도 마시지 않았고 대마초 수액으로 만든 해시시도 멀리하고 그림에 몰두했지만 가난은 그들을 춥고 배고프게 했다. 점점 나빠지는 모딜니아니의 몸, 예민한 감수성으로 점점 다가오는 어둠의 그림자를 느낀 말년의 모딜니아니는 죽음으로 인한 공포보다 아름다운 잔 에게서 일찍 떠나야 한다는 공포감으로 술을 완전히 끊을 수 없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그 짧은 창작의 시간 동안 26점이 넘는 잔의 초상을 그렸다.
클로드 루아라는 비평가는 그래서 잔의 초상들을 모딜니아니의 러브레터라고 평했다.
"이 작품들에서 모딜니아니는 거의 속삭이듯 말한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연이어 귀에 밀어를 속삭이듯 그렇게 그림에 속삭이고 있다.
결핵으로 고생하던 모딜니아니는 1920년 11월 25일 뇌막염으로 사망했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잔은 침대로 뛰어들어 모딜니아니의 주검을 으스러질 듯 껴안았다. 임신 8개월의 그가 그렇게 이성을 잃고 주검에 들러붙자 사람들은 강제로 그녀를 떼어놓으려 해도 말릴수가 없었다. 먹이를 문 맹수처럼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녀의 통곡은 비명으로 메아리쳤고 그녀는 시체와 격렬한 입맞춤을 할 때도 그들은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모딜리나이의 절친한 친구이자 모딜니아니의 전기를 쓴 시인 앙드레 살뭉은 그들의 죽음 앞에서 다음과 같이 아픈 마음을 토로했다.
편히 잠들라, 애처로운 잔 에뷔테른이여.
편히 잠들라, 당신의 죽은 아이를 요람에 넣어 흔들었을 애처로운 여인이여.
편히 잠들라, 더 이상 헌신적일 수 없었던 여인이여.
생 메다르 교구의 마리아 상과 닮았던 아메테오 모딜니아니의 죽은 아내여.
편히 잠들라, 그 새하얀 은둔처에서.
(이주헌/화가와 모델 중에서)
그림장이라는 아주 낯선이로부터 첫번째 편지 받은 후 일주일이 지난 오늘 두번째 편지가 날아왔다. 첫편지는 비구상이라는 그림 한 점과 세장의 편지와 엽서, 오늘은 여섯장의 편지와 그림 하나, 난 먹향이 좋아 먹 갈아 붓 적시어 화선지에 광란하는 마음 다스리려 광란하는 난 잎사귀 쳐본 일 밖에 없는데, 이런 이런 난감함이란
아,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