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나 한 수

기발한 마력에 끌려 잠시~~~~머물게 합니다(펌)

취한배 2004. 2. 24. 16:56
  나는 단지 좀 참기가 어려워  

                    
 X일 새벽, 한 시민의 제보로 종로구 안국동 참여연대 본부 건물 앞 인도에 한 무더기의 배설물이 놓여있음이 알려졌다. 성분 분석 결과 문제의 배설물은 짐승의 것이 아님이 밝혀졌고, 참여연대측은 즉각 성명을 발표, 이 사건의 용의선상에 놓인 단체들을 강력히 비난하는 동시,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의 구성을 요구했다.
 다음날 같은 사건이 시내 요소요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고, 이 사건의 피해자들, 국민의 힘, 자녀안심하고학교보내기 운동연합, 해병대전우회, 한국라이온스클럽, 실비아세인트식 항문성교연구모임, 성당기사단, 하나회, 한국화장실문화연합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동반자살동호회, 소형제수도사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단군 바로알고모시기 운동연합, 프리메이슨한국지부, 밝은가정 호모포비아모임, 경제정의실천협의회, 그리고 현재 해산한 것으로 알려진 동학농민운동실천협의회와 아직 생겨나지 않은 한국원주민-앵글로색슨에 의한 메스티소 반대 위원회, 그리고 공식 입장을 보류한 기타 여러 단체들은 각기 자신들의 정적에 대한 소송을 준비 중에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투서를 보내며, 마침내 자신들의 단체 내부에까지 혐의를 돌리고 있다.
 이튿날도 같은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고 일부 언론에서는 이 사건들 중 상당수가 날조된 것일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가 되지 못한 단체는 서서히 정통성에 관한 시비가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시작됐다. 우선, 경찰, 검찰이 나섰고 문화관광청, 공보처, 건설 교통부, 선거관리위원회, 병무청, 국세청, 국가 정보원 등에서 진상조사단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조사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이루어졌고, 청와대 측에서는 사건 자체에 대한 언급을 일절 거부했다.
 학계에서도 이 사건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사회학자, 철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미학자, 신학자, 지질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인류학자, 사학자, 종교학자, 해양생물학자, 신학자 등이 나름의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했고, 여기에 점성술가, 역술가, 심령학자, 음양사 등도 가세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도 발생했다. 각각의 연구 주체들은 모두 연구에 필요한 시료의 채취를 요구했는데, 대상이 될 수 있는 시료는 턱없이 부족했고, 수사 당국에서는 현장보존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 마찰은 계속되었고, 급기야 일부 학자들은 자기가 직접 동일한 장소에 똥을 누고는 그것을 채취해 시료로 사용했다. 이 행위의 정당성을 철학자, 미학자, 기호학자 등이 나서서 변호했고, 곧 모든 연구 단체에서는 이 새로운 방법론-메타가치론적 신모방-를 지지했다. 이를 계기로 연구에는 가속이 붙었고, 곧 이들은 문제의 ‘똥’에 대한 사회적 맥락, 반시대적 고찰, 사회성의 안티테제, 스콜라 철학의 반이성적 접근, 헤겔식 문답법에 의한 배설, 아르키메르데스의 이원 부피이론적 탐구, 탈레스의 변과 기호, 리만 기하학에 근거한 반유클리드 기하학적 똥의 7차원 재구성, 정언을 위한 순수이성의 발현으로서의 똥, 화성 대위법에 의한 똥의 문맥변이, 키키 스미스의 체액과 실존의 경험, 똥의 엔트로피, 똥이란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본래형태로 돌아갈 확률이 높아진다, 라는 경탄할 만한 발화에 관한 카오스 이론적 해석, 똥의 현상학적 배열 구조와 팔일무와의 유사성 고찰, 등의 논문을 발표하며, 이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진단하고, 검증하고,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주말 저녁 쇼프로들에서는 진행 중이던 코너를 잠시 중단하고, 이 사건에 관한 특집 코너를 마련했다. 한 주후, 이 코너가 정식 프로그램으로 독립하게 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심야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기계획된 주제를 뒤로 미루고 각계 인사를 한 자리에 모아 이번 사건에 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국회의원, 시민단체 간사, 교수, 소설가, 록 가수 등이 참석하여 밤샘 토론을 벌였지만, 이렇다할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이번 기획이 이 사건의 본질은 오도하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했고, 진행자는 고심 끝에 참석자들에게, 간단한 개임을 해서 지는 사람이 스튜디오 가운데 마련된 똥을 한 덩이 먹어보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기발한 제안을 했다.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고, 심야시간 최대 시청률을 훨씬 웃도는 57.30%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이 프로그램은 웹을 통해 세계 전역에 방송됐고, 방송사 서버가 다섯 시간 동안 완전히 마비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 똥 매니아들은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서울을 꼽았고, 이에 맞춰 여행사들은 서울 시내 곳곳의 사건 현장을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한 독지가는 자신의 유산 전부를 똥 기념관 건립에 사용해달라는 뜻을 밝혔다.

 이 모든 일들은 미처 똥이 얼굴을 붉힐 틈도 없이 신속하게 진행됐고, 나는 이제 변명의 기회도 가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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