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나 한 수

콩당콩당

취한배 2004. 5. 14. 07:58

최승호 시인을 찾아서



이문재  





시인의 길, 성자의 길

그들은 늘 고요하게 존재했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길이

그들의 길이었고

녹아서 큰 물의 흐름에 합류했다

("눈사람 생각 "중에서)

사진의 눈은 사진 밖의 눈을 부른다. 사진 밖의 눈은 사진 안의 눈을 먼저 찾는다. 얼굴이 나오는 모든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 에 띄는 데가 사진 속의 눈이다. 사진에서 눈은 마음의 창이 아니다. 눈은 사진의 문이다. 그 다음? 눈 바로 다음에 들어오는 드러나는 부위가 사진 속 얼굴에 대한 인상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눈 코 입 귀와 이마, 머리카락. 마음의 지형지물들). 이마! 그 넓은 이마. 최승호 시인의 얼굴 사진을 볼 때마다, 눈 다음으로, 그의 이마가 눈에 띄었다. 그의 얼굴 사진에서 눈 다음으로, 어쩌면 눈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얼굴’이 이마이다. 그의 이마는 넓고 또 넓어서 아름답다(많이 벗겨져 있는 상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 한때 나는 그의 이마를 보며, 그의 이마는 아마 성능이 대단히 뛰어난 안테나(혹은 레이다 또는 집열판)일 것, 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히말라야에 사는 신비주의자들은 제3의 눈『心眼』의 위치를 이마에서 찾는다. 경험론적 해석학(관상)에서도 넓은 이마는 지혜의 거처거니와, 그의 눈이 세속도시에 초점을 맞출 때(그의 시집에 나온 모든 사진은 지평선과 수평 이하를 이룬다. 이를테면 눈을 ‘치켜뜨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의 이마는 천상(天上) " 언어 이전 이후, 생각 이전 이후 " 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으로 보였다(나처럼 앞머리를 늘 길러 이마를 가리는 족속은 특히 지혜가 모자란다. ‘저 너머’와 교신할 때, 머리카 락이 전파를 교란한다. 제3의 눈이 없는 존재들). “내 이마는 지금 뜨거운 절벽 무소의 뿔처럼 종기가 났다 \ 썩으면 곪고 곪으면 터진다는데 지금은 고름을 만드는 시 간 \ 내 이마는 불타는 절벽 무소의 뿔처럼 종기가 났다.” 그가 지난 5월에 펴낸 일곱번째 시집 『눈사람』에 나오는 시 " 이마"의 뒷부분이다. 이 시는 “긴 코가 녹아 흘러내리는 얼음코끼리, 은회색 象王”으로 시작하고 있어서, 코끼리(불가의 대표적 상징 동물)와 ‘나’와의 유비 비유를 통해 ‘나’의 용맹정진의 한순간, 깨달음의 크낙한 경지를 바로 코앞에 둔 한 선승의 당당한 희열을 노래한 시로 읽었다, 나는.

지난 7월 중순의 한 저녁, 서울 인사동 이모집에서 그와 마주 앉았을때, 나는 어딘가 거북했다. 찬술 몇 잔을 들이킨 다음에야 나는 그 거북함의 진앙지를 발견했다. 다름아닌 그의 이마, 이마였다. 미간에서 두 치 정도 올라간, 이마의 정중앙에 팥알로 누 른 듯한 자국이 대여섯 개. 그러나 그 해독 불가능한 부호를 보고 나서도 나는 불편했다. 그 이마의 중원을 흘끗흘끗 염탐하던 나는, 더이상 참지를 못하고 그 팥알 자국의 정체를 물었다. 그는 “상기(上氣)의 분화구”라고 말했다.(상기 : 기가 머리 쪽으 로 모여 통증이 나타나는 현상. 피부가 붉게 되거나 혹이 생김. 원인 불명) "이마"는 상기와의 투병기였고 팥알만한 자국은 ‘ 상기’가 빠져나간 자리였다. 강원도 벽지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서울로 이주했을 때, 그러니까 아직 ‘북어’였을 때, 그는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밤 화두를 붙잡았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부터 밤까지는 술. 일과 술, 술과 일의 반복. 일과 술 사이, 시 쓸 시간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때부터 매일 새벽 한두시 화두와 정면하여 몸과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시를 썼다. 최승호 시인은 “아마 화두선 (간화선)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상기는 절집에서 자주 생기는 선병(禪病)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거니와, 지난 봄 며칠간 그 는 ‘판자 이빨에 털이 났느냐『板齒生毛』’라는 조주의 유명한 화두를 들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 화두를 들면 두통이 들이닥쳤다. ‘은주발에 담긴 눈’이란 화두로 바꾸었는데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기가 이마로 모여 ‘무소의 뿔’이 솟아난 것이었다. 그 뿔은 “연기가 나지 않는 분화구”였다. 인두불로 지지듯이 타들어가는 혹독한 통증. 지난 봄 동안 그는 씀바귀즙 을 장복하면서 “오장의 나쁜 기운과 내열을 없애고 악창(惡瘡)을”("씀바귀즙") 다스렸다. 그는 상기를 다스리고 난 다음,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간화선을 놓아버렸다. “미끼가 들어 있는 들소뿔에 들어가 더 들어가지 도 뒤로 물러나오지도 못하는 쥐”와 같은 꼴이 아닌가 싶었다. 그에게 화두는, 지붕에 올라가면 발길로 밀쳐내는 사다리가 아니 라 지붕으로 올라가는 발을 옥죄는 덫이었다. 간화선은 줄탁(달걀 속의 병아리로 하여금 달걀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어미닭이 달걀의 한 부분을 쪼아주는 행위)해줄 스승이 절대적 조건인데, 그는 ‘독학’을 해왔던 것이다. 언어도단, 심행처멸로 가는 길 의 지름길(해답)은 없었다. ‘무(無)로써 무문(無門)을 돌파’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원래 하드웨어가 부족한데 심신을 혹 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간화선의 길을 버리고 최근 그는, 석가의 수행법인 비파사나 수행법에 관심을 쏟고 있다. 비파사나는 단전호흡과는 다른 호흡 법으로, 기계적인 수행법이 아니다. 저마다의 개인차를 인정한다. 들숨이 생(生)이고 날숨이 멸(滅)이다. 생의 다음이 멸, 멸 다 음이 생. 생멸의 반복이 끊어지면, 죽음이다! 그러나 이 호흡법도 만만치가 않다. “들숨에 문제가 생긴 시대”이기 때문이다. 들숨은 차갑고 신선한 생명이어야 하는데, 들숨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날숨은 탁하지 않을 수 없다. 날숨은 쓰레기이고 똥 이다. 그것도 썩지 않는 쓰레기와 똥. 썩지 않는 인간. 우리 시에서 정신주의를 말할 때 최승호의 시를 제외하면 그 논의의 부피는 작아진다. 그에게 도(道)의 길은 언제부터 시작되 었던 것일까. “75년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시와 동시에 불가에 관심이 컸다. 시와 불가의 길은 나에게 둘이면서 하나” 라고 그는 말했다. 둘이면서 하나. 그러나 저 관계는 화해가 아니라 불화, 알력의 관계이다. 둘이면서 하나는, 3차원의 세계에선 불가능하다. 비현실이다. 시는 갈수록 막막하고 도는 갈수록 절망이다. 언어 너머로 가는 문이 언어로써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다. “깨달음의 세계는 언어를 도끼나 창으로 삼아 쳐들어가는 세계가 아니라는 절망”이었다. 사변적인 것(시의 어떤 숙명)과 깨달음과는 무관하다는 자각에 도달한 것이다. 그가 부처의 수행법 비파사나로 거슬러올라간 연유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 문이다. 부처가 처음 수행을 시작한 그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다. 비파사나로 가는 길을 열어놓은 한편, 그는 요즘 머리맡에 허세욱이 옮긴 『장자내편』을 두고 있다. 또다른 길이다. 시의 길과 도의 길이 하나 되는 경지가 그가 품고 있는 꿈의 궁극이다. 그러나 시와 도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시는 도 에 이르는 과정이지만, 도 그 자체는 아니다. 그가 보기에 ‘저자의 죽음’이라는 해체주의 철학도 석가와 많은 접점이 있다. 즉 무아. 그러나 해체주의는 결코 종교로 넘어가지 않는다. 석가는 자기부터 해체했지만, 해체주의는 자기를 남기고 경계만 없앤다 . 시인 또한 그러해서, 에고가 강해서, 종교 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깨닫고 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깨달음 이후에도 시 가 절실할 것인가. 그러나 최승호 시인의 생각은 달랐다. “자비는 무아에서 나온다.” 유마힐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지나면서 그 의 ‘시인론’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지향해 마지않는 시인의 한 상징이 ‘누에’의 새로운 차원인 ‘눈사람’이었다. 성자와 속인의 차이를 그는 이렇게 정돈한다. 성자는 존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고, 속인은 소유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보라. 성자가 그 제자에게 법통의 상징물로 누더기 옷과 밥그릇(의발)을 전할 때 그 의발은 ‘거지로 살아라. 알몸으로 살아라. 존재 그 자체로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먼저 간 스승은 의발이라는 상징으로 제자를 감시한다. 그는 예수보다 성 프란치스코 쪽이다. 젊은 혈기와 카리스마로 ‘무장’한 예수가 오물을 성화한 거룩한 삶이었다면, 예수의 길을 따라간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와는 또다른 경지에 올랐다. 최승호 시인이 보기에 기독교 성자들의 삶은 ‘누가 더 낮게 가느 냐, 누가 더 낮은 삶을 완성하느냐’를


지금부터 스물여덜시간 후면 존경하던 시인을 멀리 또는 가까이라도 뵐 수 있으리라 감지하며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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